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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한 딸을 지지하는 아버지

딸의 고등학교 자퇴 숙려 기간

1. 고1인 딸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구에 있는 일반고에 진학해서 3월 한 달을 열심히 생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침 5시 조금 넘어서 일어나서 명상하고 스트레칭한 후 아침 공부도 했다. 야간 자율학습뿐만 아니라 심야 자율학습까지 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 20분쯤이다. 이런 사이클로 한 달 정도 했다. 고등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다. 

한 달 동안 학교 생활에도 최선을 다했다. 발표 동아리와 도서관 봉사까지~ 이렇게 열심히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고 뿌듯한 마음과 더불어 약간의 우려도 했다. 

학교 생활에서 친구와의 관계에 힘들어 했다. 특히 딸이 다니는 학교는 남녀 공학이어서 남학생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남녀 공학에 다니며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오빠에게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딸의 생각은 보통의 그 나이 또래와는 달랐다.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용납하기도 어려워했다. 특히 여성 평등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님들 중에 여성 폄하를 하거나 남성 중심적인 말을 하면 그것도 용납하기 힘들어했다. 이렇게 생각이 뚜렷했다. 

한 달 동안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는 듯했다. 밖으로 보기에는 그러했다. 

 

2. 고등학교 자퇴를 결심한 딸

그런데 몇 주 전에 딸이 웃으면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살짝 흘렸다. "엄마 나 자퇴하면 안 돼요?" 엄마의 반응은 "자퇴하면 독립해라" 고 말하면서 웃었다. 사실 그 때 이미 딸의 마음에는 자퇴에 대한 생각이 싹트고 있었다. 그때부터 딸은 3주간 고민하며 자퇴하기 위해 관련 영상과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며 자퇴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자퇴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찾아보면서 자퇴 후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보며 점점 자퇴를 결심하게 된다. 자퇴를 결심하니까 학교 생활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 생활이 딸에게는 힘든 것으로 더 깊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자퇴의 결심을 더 굳히며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계획을 세웠다. 3일 동안 열심히 생각하며 그 생각을 편지로 옯겼다. 딸의 말에 의하면 몇 번이나 수정을 해서 자퇴를 해야 하는 이유와 결심하게 된 동기 등등을 A4 여덟 장으로 정리해서 우리 부부에게 내밀었다. 우리 부부는 딸이 내민 종이의 내용을 읽으면서 정말 대단한 딸을 키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적어서 내미는데 도저히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 읽고 일주일만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딸은 조금 더 빨리 결정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딸이 자퇴에 대한 편지를 내민 날이 수요일 저녁이니까 일요일까지만 생각해 보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이미 금요일 저녁에 자퇴하기로 한 딸을 믿어 주기로 했다. 부모로서 이렇게 결심이 확고한 딸을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냥 딸이 가는 길을 격려해 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자퇴하기로 결심한 딸의 생각을 반대해서 말린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반대하며 설득해서 고등학교에 다니게 한다고 해서 딸이 재미있게 학교에 다닐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딸의 결심대로 허락해 주기로 했지만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지해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3. 모래부터 시작될 자퇴숙려기간

자퇴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담임선생님과 먼저 상담을 해야 한다. 그래서 딸에게 선생님과 상담할 날짜와 시간을 잡으라고 했다. 그래서 딸로부터 자퇴 결심을 통보받은 날로부터 4일 뒤인 월요일 오후에 상담을 했다.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의외로 자퇴 절차가 까다롭지는 않았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고 부장 선생님의 결재와 교장선생님의 결재 후 일주일 이상 자퇴 숙려기간을 가진다. 자퇴 숙려기간 동안에 학교 안에 있는 상담센터인 위클래스로 가서 상담을 받는다. 위클래스도 학교와 같이 시간을 운용하지만 상담실에서 하루 종일 보낼 수 없어서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두 시간 정도만 머문 후 부모 지도 아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집에 와서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어제(월요일) 오후에 상담해서 내일부터 숙려기간을 가지려고 했지만 교장 선생님의 결재가 안 나서 수요일부터 숙려기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딸은 오늘부터 숙려기간이 되길 원했지만 결재가 안 되어서 할 수 없이 내일부터 숙려기간이 시작된다. 오늘 하루 딸은 마지막 고등학교 정식 수업을 하게 된다. 지금 딸의 마음은 어떨까? 자퇴를 허락해 주니까 그때 행복해 하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아마도 행복한 마음과 염려되는 마음이 뒤엉켜 있을 것이다. 숙려 기간 동안 위클래스 상담 선생님이랑 싱딤하는 것은 자태를 위한 절차이지만 그 기간을 통해 자퇴를 포기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딸은 워낙 확고해서 그 결심을 돌이킬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 마음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자퇴 숙려 기간 동안 딸이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